광복은 1945년 8월 15일에 찾아왔다. 그런데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광복 장면에는 8월 16일이라는 설명이 자주 붙는다. 날짜가 엇갈린 것이 아니라 항복 발표가 있던 날과 소식을 체감한 대중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온 날 사이에 시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 연표는 1945년 8월 15일을 광복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이뤄진 날로 기록한다. 국가보훈부 교육자료도 이날 낮 12시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전해졌다고 설명한다.
항복 방송이 나온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정오의 방송은 일본이 연합국의 공동선언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표로 식민지배가 끝났다는 사실이 공식화됐지만, 오늘날 긴급 알림처럼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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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방송을 들은 사람도 어려운 표현 때문에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국가보훈부 교육자료가 8월 15일 서울을 비교적 조용한 모습으로 설명하는 이유다.
이는 광복 소식이 15일에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항복 발표를 들은 일부가 주변에 소식을 전했지만, 전달 수단과 언어의 장벽 때문에 시민들이 같은 시각에 상황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시민들은 이튿날 왜 거리에 모였나
이튿날인 8월 16일 정치·경제 사범들이 풀려나고 해방 소식이 널리 퍼지면서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국가보훈부 교육자료는 시민들이 독립 만세를 외쳤고 여운형이 휘문고등학교에서 해방 이후의 조선에 관해 연설했다고 전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도 날짜가 분명한 장면이 남아 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여운형을 환호하며 맞이하는 시민들의 사진 설명에는 1945년 8월 16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튿날 사진도 광복의 기록이다
국가보훈부 교육자료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태극기 군중 사진을 8월 16일 촬영분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사진의 촬영일이 16일이라고 해서 광복절과 무관하거나 날짜가 잘못 붙은 것은 아니다.
8월 15일은 일본의 항복 발표와 광복이 확인된 날이고, 8월 16일은 그 소식이 대중의 집결과 환호로 가시화된 날이다. 광복절 사진을 볼 때 사건의 날짜와 사진에 담긴 행동의 날짜를 나눠 읽으면 1945년 그 이틀의 흐름이 더 정확하게 보인다.








